산문

산문4 | 이슬이 전한 편지(산문집 | 오솔길에서 온 편지 중) - 多原

多原(다원) 2025. 6. 19. 02:56

산문4 | 이슬이 전한 편지


아침 숲길을 걷다 보면, 내 발목에 닿는 차가운 감촉이 있다. 바로 이슬이다. 햇살이 아직 닿지 않은 시간, 풀잎 끝에 맺힌 이슬방울들이 조심스레 나를 맞이한다. 그 조그만 물방울 속에는 밤새 숲이 써 내려간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 같다.

나는 가끔 그 이슬을 '편지'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도 보내지지 못한 말들, 말끝에 머물러 있던 감정들, 마음속에만 남겨 두었던 속삭임들. 이슬은 그 모든 것을 대신 적어 내려간 것처럼 맑고 투명하다.

풀잎 위에서 반짝이는 이슬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 마음도 잠시 멈춘다. 그 안엔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서인지 오히려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어젯밤 내가 품었던 근심도, 누군가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도, 고요한 기도로 바뀌어 이슬로 내려앉은 듯하다.

그날 아침, 나는 한참을 멈춰 서 있었다. 햇살이 이슬을 데려가기 전, 그 작은 편지들을 더 오래 느끼고 싶었다. 이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 침묵이 내 안에 말을 건넨다.

“너는 잘하고 있어.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대로 충분히 아름다워.”

그 말을 듣고 있는 듯한 착각, 아니,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진동은 분명했다. 이슬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머물러 있다가 사라지지만, 그 잔상은 오래도록 남는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가슴 속에 남는다.

나는 오늘도 이슬이 전한 편지를 가슴에 품고 걷는다. 흔적 없이 사라지는 존재가 얼마나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는지, 그 이슬이 조용히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짧은 편지. 그러나 가장 진실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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