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저녁의 숨결, 그대의 소리 - 多原

에세이 | 저녁의 숨결, 그대의 소리
비 그친 여름 저녁은 언제나 조금 다릅니다. 공기는 물기를 머금고, 땅은 젖은 채로 고요히 숨을 쉽니다. 바람은 그 젖은 숨결을 감싸 안고, 조용히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갑니다. 나뭇잎은 방금 전까지의 비를 품은 채, 느릿하게 흔들립니다. 그 사이로 들려오는 소리들—그것은 단순한 소리가 아닌, 기억이고 그리움입니다.
어느 골목 어귀에서 문득, 누군가의 삶이 피어나는 걸 느낍니다. 부엌에서 나는 냄비 뚜껑 여닫는 소리, 끓는 냄비의 숨결, 고슬고슬 익어가는 밥 냄새. 그 모든 작은 일상의 소리들이, 어쩌면 사랑이 피어나는 순간이기도 하지요.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가 들릴 때, 마음과 마음이 조용히 맞닿는 걸지도 모릅니다.
창밖 공기엔 모기향이 희미하게 떠오르고, 멀리 어딘가에선 나뭇가지 타는 냄새가 은근히 번져옵니다. 구수한 찌개의 냄새가 그 사이를 뚫고 스며들고, 청각과 후각이 뒤섞인 풍경이 마음 안 깊은 곳을 붕붕 울립니다. 마치 오래된 하모니카가 낡은 멜로디를 불어넣는 듯이요.
나는 문득 당신의 창문을 떠올립니다. 조용히 켜진 노란 불빛 아래,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쌀을 씻는 소리, 물과 곡식이 부대끼는 찰방찰방한 그 소리가 어쩐지 조금은 외로워 보입니다. 혹시 당신도, 그런 저녁에 문득 목이 메이지는 않나요? 아무렇지 않던 하루가, 어떤 순간 불현듯 그리워지지는 않나요?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상상합니다. 당신은 지금, 어느 작은 집 앞마당에서 초승달 아래 군불을 지피고 있을지도요. 따뜻한 불길 위에 된장국을 끓이며, 작고 둥근 솥에 밥을 지으며, 고요한 저녁을 살아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달빛이 조용히 당신의 어깨를 감싸고, 그 부드러운 빛이 나에게까지 닿아옵니다.
비 그친 저녁, 나는 오늘도 당신이 사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 소리는 나에게 안부가 되고, 기도가 되고,
끝내는 사랑이 되어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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