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산문 | 바람, 마음의 그림자를 스치는 순간 (다원)

多原(다원) 2025. 7. 5. 19:37

바람, 마음의 그림자를 스치는 순간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늘 곁에 있다.
손에 잡히지 않지만
때로는 그 무엇보다 분명하게 느껴진다.

한낮의 따뜻한 바람,
저녁 어스름의 쓸쓸한 바람,
새벽녘 살갗을 깨우는 차가운 바람.
같은 바람인데, 날마다 다르게 내 마음을 건드린다.

어떤 날은 무거운 생각을 덜어주는 바람이었고
어떤 날은 떠난 사람의 목소리를 실어오는 바람이었다.
그 바람은 내게 가볍게 말을 건네기도 했고,
아무 말 없이 스쳐가며 등을 토닥여 주기도 했다.

바람은 방향을 바꾸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다.
흩어지는 것 같지만 끝내 제 길을 찾아간다.
나도 그런 바람처럼 살아야지, 다짐했던 날이 있었다.
흔들려도 괜찮고, 떠밀려도 괜찮다.
다만 나를 잃지 않으면 된다고.

바람은 종종 추억을 데려온다.
햇살 가득하던 어느 봄날의 공기,
함께 걷던 골목길의 냄새,
먼 곳으로 떠났던 사람의 향기.
그 모든 것들이 바람을 타고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문득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는다.
그 바람이 데려오는 기억이, 아직 내 안에 살아 있다고 느끼고 싶어서.

가장 맑은 날에도,
가장 흐린 날에도
바람은 쉼 없이 불어온다.
누구를 위로하려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바꾸려는 것도 아닌 채,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하면서 모든 걸 어루만진다.

그 조용한 바람을, 나는 오늘도 믿는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눈에 보이지 않아도
우리 곁을 끝내 떠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그것이 바람이고,
또한 사랑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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