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 그대가 서 있는 해질녘 길 위에서 (多原)

산문 | 그대가 서 있는 해질녘 길 위에서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나는 종종 길 위에 멈춰섭니다. 이유 없이 마음이 서성이는 날이면 더욱 그렇습니다. 하루의 끝자락, 햇살의 마지막 조각들이 노을이 되어 산 너머로 스미는 풍경은 언제 보아도 경이롭습니다. 그 노을 속에 그대가 서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바람이 불어옵니다. 설핏설핏 불어오는 그 바람은, 어디선가 그대의 목소리를 실어오는 것 같고, 어디선가 나의 이름을 낮게 불러주는 것 같아 나는 자꾸만 발걸음을 멈추고 맙니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대를 처음 떠올린 그날 저녁이었을 겁니다.
그대, 여여하시나요. 내 마음에 들어와 고요히 머물렀던 그대는, 여전히 바람 속에서, 별빛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계신가요. 나는 때때로 마음의 뜰에서 그대를 꺼내어 봅니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아도, 기억해주지 않아도, 그대는 내 안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습니다. 마치 오래된 책갈피 속 시 한 구절처럼. 페이지를 넘기다가 문득 발견한 그 시가, 내 하루를 다정하게 감싸주듯이.
걷다가 놓친 길 위에, 우리는 그렇게 마음을 내려놓는 법을 배웁니다. 다시는 오지 않을 계절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사람을, 그래도 그리워하는 일을 멈추지 못하는 마음을. 그렇게 나는 오늘도 그대를 생각합니다. 조용히, 아주 조용히.
어쩌면 그대는 지금, 저녁 하늘의 가장 빛나는 별 하나로 나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 혼자서 속삭이는 이름이 그대에게 닿기를, 내가 지금 이 순간 느끼는 이 감정이 바람을 타고 그대에게 닿기를, 조용히 바라봅니다.
그대는 내 마음에 물결을 일으킨 단 한 사람. 어느 날 문득 조약돌 하나를 던지듯, 내 가슴속 그리움의 강물 위에 잔잔한 파문을 남기고 떠난 사람. 그대가 남긴 그 물결 소리 덕분에 나는 아직도 가슴 떨리도록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그리운 이여, 그대가 있기에 나는 오늘도 따뜻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머물렀던 내 마음의 길섶은 여전히 그대의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그대는 나의 계절이었고, 나의 하루였으며, 여전히 나의 ‘그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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