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산문 | 저녁, 그대가 사는 소리 - 多原

多原(다원) 2025. 6. 22. 03:38


산문 | 저녁, 그대가 사는 소리


비가 그치고 난 여름 저녁은 언제나 조금 특별합니다. 자욱한 습기 속에 무언가 말없이 피어오릅니다. 땅은 젖은 채로 숨을 쉬고, 바람은 그 젖은 숨결을 담아 조용히 지나갑니다. 나뭇잎은 비를 머금은 채 천천히 흔들리고, 그 사이로 들려오는 소리들
그건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으로 스며드는 기억이자 그리움입니다.

어느 골목 어귀에서, 누군가의 삶이 느껴집니다. 그대가 사는 소리. 저녁밥 짓는 소리. 부엌에서 냄비 뚜껑을 여닫는 소리와 가스 불 위에 팔팔 끓는 냄비의 숨소리, 그리고 어쩌면 고슬고슬 익어가는 밥알의 작은 탄성까지. 숟가락이 부딪히는 소리가 나면, 어딘가에서 사랑이 피어나는 걸까요. 옹기종기 둘러앉은 저녁 밥상 위에서 따뜻한 마음들이 서로에게 건네지는 순간, 그 소리는 단순한 일상의 소리가 아닌, 삶의 깊은 울림이 됩니다.

문득 모기향 타는 냄새가 납니다. 나무 타는 향도 함께 따라옵니다. 그리고 그 사이로 구수한 된장찌개의 냄새가 스며듭니다. 청각과 후각이 뒤섞여, 마치 오래된 하모니카처럼 붕붕거리며 울립니다. 그 소리는 음악이 되고, 풍경이 되고, 마음속 한켠에 자리한 오래된 사랑을 깨웁니다.

그대의 창문에도 불이 켜졌겠지요. 노랗고 조용한 등불 아래, 당신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요. 그 불빛도 붕붕거리며 당신의 행복을 나에게 전하려는 걸까요. 혹은, 그 속에 살짝 스며든 쓸쓸함까지도 함께 보내려는 걸까요. 쌀이는 소리가, 찰방찰방 물과 곡식이 만나 서로 부대끼는 그 소리가, 어쩐지 조금은 외롭게 들리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요. 혹시나 그대도 밥을 먹다 문득, 그런 저녁이 목이 메이지는 않는지—그저 평범하게 흘러가는 하루가, 어느 순간 갑작스레 그리워지지는 않는지, 나는 조용히 되묻습니다.

어디선가 나뭇가지 태우는 냄새가 짙게 풍겨옵니다. 여름 저녁, 습기를 머금은 공기 속에 그 냄새는 더욱 또렷하게 다가옵니다. 나는 가만히 눈을 감습니다. 그리고 상상합니다. 그대는 지금, 어느 별 아래, 군불을 지피며 저녁을 짓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따스한 불길 위에 된장국을 끓이고, 작은 솥에 밥을 지으며, 아늑한 초가집 안에 앉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집 앞마당엔 초승달이 걸려 있고, 달빛이 당신의 어깨를 조용히 감싸 안고 있겠지요.

나는 그 모든 장면이 너무 선명해서, 마치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 느껴집니다. 비 그친 저녁, 나는 오늘도 당신의 삶의 소리를 듣습니다. 당신이 사는 소리. 당신이 사랑하고, 당신이 그리워하고, 당신이 하루를 살아내는 소리. 그 소리는 내게 안부가 되고, 기도가 되고, 끝내는 사랑이 되어 돌아옵니다.

당신이 있는 그곳이 어디든, 거기서 피어나는 모든 작은 소리들이 나에게 닿기를 바랍니다. 마치 하모니카 소리처럼, 은은하게, 끊임없이, 나를 그대에게로 이끌기를.

한없이 사랑하는 그대,
당신이 사는 소리는 오늘도 내 마음을 붕붕 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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