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집

산문집 | 오솔길에서 온 편지 (다원)

多原(다원) 2025. 6. 29. 14:47

산문집 | 오솔길에서 온 편지


부제 : 작고 조용한 길 위에서, 자연과 마음이 주고받은 이야기

목차


1. 산책길의 속삭임
 – 내가 사랑한 그 오솔길, 풀꽃과 솔향기, 생명 가득한 아침의 시작.

2. 비 오는 날의 숲길
 – 고요하게 내리는 비와 함께하는 위로의 시간.

3. 풀꽃과 나눈 대화
 – 아무 말 없이 다가오는 존재, 풀꽃의 언어에 마음을 여는 순간.

4. 이슬이 전한 편지
 – 새벽의 물방울 안에 담긴 작고 진실한 위로.

5. 바람이 알려준 방향
 –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는 길, 삶이 속삭이는 나만의 나침반.

6 겨울 숲의 고요
 – 아무것도 없는 듯한 계절에서 배우는 멈춤과 기다림의 의미.

7. 마음 안의 오솔길

8. 그들도 함께 걷는 법

산문1 | 산책길의 속삭임


아침이면 나는 조용히 집을 나선다. 아무도 깨지 않은 시간, 도시의 소음은 아직 잠들어 있고, 새벽의 공기에는 어제보다 조금 더 깊은 평온이 배어 있다. 내가 향하는 곳은 이름 없는 오솔길.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작은 길이지만, 내 마음속에는 분명히 이름이 있다. ‘내가 사랑한 길’이라고.

숲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언제나 조금은 낯설고 조금은 익숙하다. 눈을 감고 걸어도 두렵지 않은 이 길은, 언젠가부터 나에게 하나의 기도가 되었다. 팔을 벌리면 닿을 듯한 나뭇가지들, 그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 그리고 땅 위에 조용히 피어난 꽃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은 채 피어 있는 꽃들은 나를 향해 웃는 듯하다. 말없이 피어났지만, 그 존재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생명들.

걸음을 멈추고 귀 기울이면 풀벌레들의 합창이 들려온다. 바람에 실려 오는 솔향기는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을 깨끗이 씻겨준다. 그 순간마다 나는 내가 살아 있음을, 그리고 살아 있음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를 실감한다.

풀꽃들은 참 조용하다. 그저 그 자리에, 묵묵히, 그러나 투명하게 서 있다. 그들은 내가 잊고 있던 것을 가르쳐준다.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존재의 힘, 소리 없이도 충분한 말들, 그리고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삶의 아름다움.

어느 날은 그렇게 길가에 주저앉아 풀꽃들과 마음을 나누기도 한다. 풀꽃들의 언어는 어쩌면 가장 순수한 언어일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설득하려 하지 않고, 그저 존재함으로써 모든 걸 말하고 있다.

나는 그런 길을 걷고 싶다. 풀꽃처럼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흔들리더라도 꺾이지 않는 뿌리를 가진 채. 내가 걷는 이 산책길은 매일 같은 길이지만, 날마다 새로운 길이다. 아침 이슬이 내 발목을 적시면, 그것은 오늘 하루가 내게 내린 첫 번째 축복이다.

이 길 위에서 나는, 내가 살아가야 할 삶의 태도를 배운다. 바쁘지 않게, 조용히 그러나 깊게. 투명하게, 흔들리더라도 고요하게. 이 오솔길은 단지 산책의 길이 아니다. 이 길은 나를 닮아가고, 나는 이 길을 닮아간다.



산문2 | 비 오는 날의 숲길


비가 오는 날, 나는 더 자주 숲을 찾는다. 사람들은 우산을 들고 바삐 걸음을 재촉하지만, 나는 일부러 느릿하게 걷는다. 비는 나에게 말을 거는 자연의 목소리 같기 때문이다. 부드럽고 조용한 목소리, 그러나 결코 약하지 않은.

숲길에 들어서면 흙내음이 먼저 나를 반긴다. 평소보다 더 짙고 진한 그 향기는 마음속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 나도 모르게 숨을 고르게 만든다. 나뭇잎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세상의 시계를 잠시 멈춰 세우는 듯하다. 나도 모르게 걸음을 늦추고, 귀를 기울인다. 자연은 언제나 말이 많지 않지만, 이렇게 조용한 날엔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비에 젖은 풀잎은 반짝이고, 나무들은 마치 긴 세월의 먼지를 씻어낸 듯 맑아진 얼굴을 하고 있다. 꽃들도 고개를 숙이며 비를 맞고 있다. 무겁고 힘들 것 같은데도, 그 모습이 참 다정하게 느껴진다. 나도 그 곁에 가만히 앉는다. 풀꽃 하나와 마주 앉아, 아무 말 없이 같이 비를 맞는 시간.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된다.

가끔은 빗물이 마음 안쪽까지 스며드는 것 같다.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고요하게 차오른다. 어쩌면 그건, 내가 오래전 잊고 살았던 감정들일지도 모른다. 그리움, 망설임, 다정함 같은 것들.

비는 멈추지 않고, 숲길은 더 깊어진다. 물기를 머금은 땅은 발자국을 남기고, 나는 그 흔적 속에 오늘의 기억을 묻는다. 내일이면 또 사라질 자국이지만, 그것이 바로 자연의 법칙이고, 삶의 모습 아닐까.

비 오는 숲길은 나에게 묻는다.

“너는 너의 마음을 잘 돌보고 있니?”

그 물음에, 나는 고개를 조용히 끄덕인다. 말 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산문3 | 풀꽃과 나눈 대화


햇살이 부드럽게 내리던 어느 날 아침, 나는 여느 때처럼 숲으로 향했다. 바람은 적당히 불고, 하늘은 한 점 구름 없이 맑았다. 그런 날엔 무언가 좋은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발끝에 조용히 피어난 풀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름 모를 꽃들. 하지만 나는 그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무심한 듯 피어 있는 그들의 얼굴은 늘 나를 붙잡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 앞에 쪼그려 앉아, 그들과 대화를 시작한다.

"오늘은 기분이 어때?"
내가 속삭이면, 풀꽃은 바람을 통해 대답한다.
“그저 이렇게 피어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아.”

그 말에 나는 한참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살아간다는 것이 어쩌면 그런 것 아닐까.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피어나는 것.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 존재만으로 충분한 것.

풀꽃은 더 많은 말을 하지 않지만, 나는 오히려 그 침묵 속에서 깊은 위로를 받는다. 사람들은 종종 말로만 다가오지만, 풀꽃은 존재 자체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존재는 어느 날은 나보다 더 단단하고, 또 어느 날은 나보다 더 투명해 보인다.

나는 그 풀꽃에게 내 마음을 건넨다. 요즘 자주 지치는 일들,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 말로 꺼내기엔 무거운 마음의 조각들. 풀꽃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바람에 실려 나를 다독인다. 그 다정함은 말보다 깊다.

그날 이후 나는 알게 되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마음은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작고 여린 풀꽃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걷는다. 풀꽃과의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기 위해.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전해지는, 조용하지만 따뜻한 풀꽃처럼.


산문4 | 이슬이 전한 편지


아침 숲길을 걷다 보면, 내 발목에 닿는 차가운 감촉이 있다. 바로 이슬이다. 햇살이 아직 닿지 않은 시간, 풀잎 끝에 맺힌 이슬방울들이 조심스레 나를 맞이한다. 그 조그만 물방울 속에는 밤새 숲이 써 내려간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 같다.

나는 가끔 그 이슬을 '편지'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도 보내지지 못한 말들, 말끝에 머물러 있던 감정들, 마음속에만 남겨 두었던 속삭임들. 이슬은 그 모든 것을 대신 적어 내려간 것처럼 맑고 투명하다.

풀잎 위에서 반짝이는 이슬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 마음도 잠시 멈춘다. 그 안엔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서인지 오히려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어젯밤 내가 품었던 근심도, 누군가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도, 고요한 기도로 바뀌어 이슬로 내려앉은 듯하다.

그날 아침, 나는 한참을 멈춰 서 있었다. 햇살이 이슬을 데려가기 전, 그 작은 편지들을 더 오래 느끼고 싶었다. 이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 침묵이 내 안에 말을 건넨다.

“너는 잘하고 있어.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대로 충분히 아름다워.”

그 말을 듣고 있는 듯한 착각, 아니,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진동은 분명했다. 이슬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머물러 있다가 사라지지만, 그 잔상은 오래도록 남는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가슴 속에 남는다.

나는 오늘도 이슬이 전한 편지를 가슴에 품고 걷는다. 흔적 없이 사라지는 존재가 얼마나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는지, 그 이슬이 조용히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짧은 편지. 그러나 가장 진실한 위로.


산문5 | 바람이 알려준 방향


나는 가끔 방향을 잃는다.
생각이 너무 많아지고, 마음이 무거워질 땐 어느 길이 맞는지도 모른 채 그저 걷기만 한다.
그럴 때 나는 숲으로 간다. 목적지도, 이유도 없이 그저 걷는다.

숲에 들어서면 언제나 바람이 먼저 나를 맞이한다. 나뭇가지 사이를 지나며 속삭이듯 불어오는 바람. 그 바람을 맞는 순간, 나는 마음의 창문 하나를 열어둔 것처럼 느껴진다. 닫아두었던 생각, 숨겨두었던 감정들이 그 틈으로 천천히 흘러나간다.

그날도 그랬다. 나는 말없이 걷고 있었고, 바람은 내 옆에서 나지막이 말을 걸었다.
“지금 너는 어디로 가고 있니?”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조차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람은 언제나 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었다. 막막했던 길 끝에 작은 풀꽃이 피어 있었고, 빛 한 줄기가 나무 틈으로 스며들어 있기도 했다. 혼자라고 느끼던 순간마다, 바람은 어김없이 내 곁에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알았다. 꼭 정해진 길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것을. 때론 멈춰 서는 것도, 돌아가는 것도 길이라는 것을. 바람은 그렇게 말 없이 나를 가르쳐주었다. 방향이란 ‘찾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는 걸.

바람이 부는 쪽으로 잠시 걸음을 옮겨보면, 마음도 따라 움직인다. 억지로 가지 않으려 해도 된다. 마음이 머무는 곳이 길이 되는 법이니까. 바람은 어제도 오늘도 내게 그렇게 속삭이고 있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될 때,
잠시 멈추고 숨을 쉬어봐.
네 마음이 가리키는 곳이 결국,
가야 할 방향이야.”

나는 이제 예전처럼 두렵지 않다. 내 곁에는 늘 바람이 있고, 그 바람은 말없이도 길을 알려주니까.


산문6 | 겨울 숲의 고요


겨울이 되면 숲은 말을 줄인다.
풀잎은 시들고, 꽃은 사라지고, 나무는 잎을 내려놓는다. 마치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숲 전체가 깊은 숨을 쉬며 침묵 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그 조용한 숲을 찾는다. 쓸쓸할 줄 알았던 겨울의 숲은, 뜻밖에도 가장 온전한 평화를 안겨준다. 눈이 내린 날에는 발자국 소리마저도 작아지고, 세상은 온통 하얀 숨결로 가득 차 있다. 그 속을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속 소리까지 잠잠해진다.

겨울 숲에는 ‘비움’이라는 지혜가 있다. 봄에 피어나기 위해, 여름에 무성해지기 위해, 가을에 내려놓기 위해, 결국 겨울에는 모두가 쉬어간다는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겨울 숲은 말없이 가르쳐준다.

고요는 침묵이 아니라, 더 깊은 대화다.
내면과 나누는 대화, 지나온 시간들과의 대화, 그리고 다가올 계절에 대한 속삭임. 나는 가끔 눈 덮인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저 가지 안에도 다시 피어날 꿈이 잠들어 있다고. 그리고 나의 안에도 아직 녹지 않은 희망이 조용히 숨 쉬고 있다고.

겨울 숲의 고요는 외로움을 덜어주고, 스스로와 마주할 용기를 준다. 흩어진 마음을 한곳에 모아주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단단한 평화를 길러준다.

나는 겨울 숲을 걷는 사람이다.
소란한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말 없는 나무들과 나눈 고요 속에서 나를 회복하는 사람. 언젠가 이 고요가 지나면, 다시 피어날 것을 안다. 그래서 지금은 고요 속에 머문다.

하얀 나무 그림자 사이로,
오늘도 천천히 나를 돌아본다.


산문7 | 마음 안의 오솔길


사람들은 흔히 길을 밖에서 찾는다.
지도를 펴고, 방향을 정하고, 누군가 앞서간 자취를 따라 걷는다.
하지만 나는 알게 되었다.
진짜 중요한 길은 언제나, 마음 안쪽에 있다는 걸.

숲길을 걷다 보면, 그 조용한 길이 어느새 내 마음의 풍경을 닮아 있다는 걸 느낀다.
외롭던 날엔 길도 조용하고, 마음이 맑은 날엔 숲도 환하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오솔길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깊숙한 곳을 걷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마음 안에도 오솔길은 있다.
그 길은 넓지 않고, 반짝이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자랑할 만한 화려함은 없지만,
그곳에는 나만의 기억과 상처, 그리고 다정함이 숨어 있다.

어느 날은 그 길에서 오래전에 잊은 감정을 마주하고,
또 어떤 날은 나조차 몰랐던 나의 단단함과도 마주친다.
그런 만남은 언제나 조용히, 그러나 깊게 다가온다.
무겁지 않게,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게.

살아간다는 건, 결국 자기 마음 안의 길을 걷는 일이 아닐까.
어디로 향하는지 몰라도, 하루하루 묵묵히 걷다 보면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속도로, 가장 필요한 풍경 속에 도달하게 된다.

나는 그 오솔길을 걸으며 배운다.
내가 나를 이해하는 시간 없이, 누구를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나의 아픔과도 함께 걸을 수 있을 때,
비로소 타인의 그림자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나는 걸어간다.
마음 안에 숨겨져 있던 오솔길을 따라.
그 길 끝에는 반드시 무엇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길 위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내겐 충분하다.


산문8 | 그늘도 함께 걷는 법


숲길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햇살 가득한 공간을 지나 그늘진 곳으로 들어서게 된다.
처음에는 그 그늘이 낯설고, 서늘하고, 때로는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곧 나는 깨닫는다.
그 그늘 없이는 빛도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삶도 그렇다.
기쁨과 웃음 뒤에는 슬픔과 고통이 있고,
밝음 속에는 어둠이 공존한다.
그 둘은 서로를 나누는 경계가 아니라,
서로를 완성하는 한 조각임을.

나는 그늘진 길을 걸으며, 나 자신의 어두운 부분들과 만난다.
피하고 싶었던 두려움, 숨기고 싶었던 상처,
외롭고 약한 나의 모습들.
그 모든 것이 나라는 사람의 일부임을 인정한다.

그리고 조금씩 배운다.
그늘과 함께 걷는 법을.
그늘이 나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키고 품어주는 곳임을.

그 그늘 아래서 나는 쉬어간다.
무엇 하나 부인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서서히 숨을 고른다.

그리하여 다시 빛나는 곳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그 빛도 결국 그늘이 있었기에 더욱 선명해질 수 있었다는 것을 안다.

산책길의 끝에 서서, 나는 말한다.
“빛만 바라보지 말자.
그늘도 함께 걸으며,
온전히 나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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