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이 숨을 고른다
소리는 저 멀리 사라지고
움직임은 시간의 틈으로 스며든다
마치 이 세상에
나 하나만 남겨진 듯 도시는 멈춰 있다
나는 고요를 찾아 나선다
모든 것이 정지된 밤
누구의 발자국도 닿지 않은 그 거리를
가만히 걸어간다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친다
피부 위로 지나간 바람의 감촉이
이 밤을 증명한다
서로를 비비는 나뭇잎들의 떨림
풀벌레들이 흘리는 한 줌의 숨결
그 모든 것이 내 안에 들어와
나의 심장처럼 떨린다

나는 묻는다
이 차가운 공기가 나인가
뺨을 타고 흐르는 그 감각이 나인가
바람 속에 스미는 이 작은 소리가 나인가
세상의 모든 것이 나처럼 느껴질 때
나는 조금씩 사라지고
그러면서 조금씩 생겨난다
그 경계 없는 순간에
사랑이 찾아온다

이름도, 형태도 없는 그것이
고요히, 웅장하게 내 안에 내려앉는다
사랑은 멀리 있지 않다
그것은 침묵이고, 떨림이며
이 겨울의 온기 없는 밤 속에서
조용히 나를 부른다
나는 그 사랑 앞에 선다
사라지듯 남겨지는 존재로
비워지듯 채워지는 마음으로...

그리고 안다
내가 이 세상에 줄 수 있는 단 하나
그것 역시 사랑이라는 것을
무겁고 부드럽고 말없이 깊은
그러나 모든 것을 감쌀 수 있는
웅장한 사랑
그리하여 나는 걷는다
이 계절이 오면 언제나
내 온 피부를 바람에 내어주고
세상 전체가 나로 가득 찰 때까지...
그리고 다시 사랑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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